데이터센터·ESS 열관리 수요↑…액침냉각 성장 가속화
“스페셜티만이 살길”…석화업계, 新산업 트랜드 초점
SK에너지의 코프로세싱 방식 지속가능항공유(SAF) 연속 생산 설비(SK이노베이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이 임박한 가운데 정유·화학 업계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가혹한 불확실성이 맴돌고 있다.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자국 우선 주의 기반 관세 정책과 중국발(發) 공급과잉이 맞물려 올해 우리나라 주요 기간 산업의 수출 역시 큰 폭 둔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상황이다. 이에 정유·석유화학 업계 일각에서는 유의미한 성장을 위해선 미래 먹거리 선점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글로벌 환경 '격동'…석유산업 안심 못해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재출범과 중동 지역 정세 변화 등 글로벌 환경 불안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내 석유산업도 변화의 시기에 놓이게 됐다. 정유업계 수익성의 지표인 정제마진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최저 수준이다. 작년 1분기 평균 7.3달러를 기록했던 정제마진은 2분기 3.5달러, 3분기 3.6달러 등 부진하며 정유사 실적에 타격을 입힌 바 있다. 여기에 이스라엘과 이란 등 중동지역 정세불안으로 인해 유가 변동성까지 덮쳤다.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는 배경이다. 탄소중립 추진과 에너지전환의 시대적 흐름에 따라 정유산업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신사업을 통한 혁신을 추진하고 있지만, 실제 성장하고 자리 잡기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필수적이다.
특히 정유사들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액침 냉각·지속가능항공유(SAF)·바이오 선박유 등 신사업을 통한 혁신을 꾸준히 추진 중이다.
먼저 국내 정유사들은 액침냉각 사업 공략에 나서고 있다. 이는 비(非) 정유부문 사업 확대와도 맞닿아 있는 부분으로 글로벌 탈탄소 기조 속 가장 대표되는 미래 성장동력 중 하나다. 정유업계는 액침냉각 사업을 적극적으로 확대해 새로운 수익원으로 키워낸다는 전략이다.
최근 AI·클라우드 컴퓨팅·빅데이터 분석 등의 발전으로 데이터 처리량과 전력 소비가 급격히 늘고 있다. 액침 냉각기술은 효율적인 냉각 성능 향상 방법으로 이러한 변화에 대응할 수 있고 전기차와 에너지 저장시스템(ESS)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다.
HD현대오일뱅크는 세계 최대 액침냉각 시스템 기업인 GRC로부터 액침냉각 전용 윤활유 '엑스티어 E-쿨링 플루이드'의 일렉트로세이프 프로그램 인증을 획득했다. 해당 인증은 아직 공인 제품 규격이 미흡한 액침냉각 전용 윤활유 시장에서 가장 신뢰성 높은 지표로 평가받는다.
에쓰오일은 섭씨 250도 이상의 고인화점 액침냉각유 '에쓰오일 e-쿨링 솔루션'을 내놨다. 고인화점 액침냉각유는 위험물 안전 규제가 엄격한 한국, 일본 등 동북아 시장을 중심으로 수요가 일고 있다. 에쓰오일은 저인화점 제품부터 고인화점 제품까지 제품군을 구축, 데이터센터 열 관리와 에너지 효율화 분야에서 경쟁력을 한층 강화했다.
GS칼텍스는 2023년 액침냉각 전용 윤활유 '킥스 이머전 플루이드 S'를 출시하며 열관리 시장에 진출했다. GS칼텍스는 전기차·배터리 기업과 협력해 분야별 특화된 액침냉각 제품의 개발도 진행하고 있다.
또 정유사들은 2027년 30조원까지 늘어날 SAF 시장을 주목하고 있다. SAF를 신성장동력으로 낙점하고 선의의 경쟁을 벌이고 있는 정유사들은 SAF를 포함한 친환경연료 분야에 2030년까지 총 6조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SK에너지는 코프로세싱 방식의 SAF 전용 생산라인을 갖추고 지난해 10월부터 상업생산에 들어갔다. SK에너지의 생산라인은 기존 석유제품 생산공정에 석유 원료와 함께 바이오 원료를 동시에 넣어 석유제품과 저탄소 제품을 생산하는 방식이다.
GS칼텍스는 SAF 첫 상업 수출에 성공했다. GS칼텍스는 지난해 9월 세계 최대 바이오연료 생산 기업인 핀란드 네스테의 100% SAF를 공급받아 일반 항공유와 혼합 제조한 'CORSIA SAF' 5000킬로리터(㎘)를 일본 나리타 공항에 공급했다.
에쓰오일은 코프로세싱 방식으로 SAF를 생산하기 위한 바이오원료 저장 탱크와 전용 배관을 울산공장에 건설 중이다. 올해 상반기까지 설비 구축을 마치면 원하는 시기에 바이오원료를 공정에 투입해 SAF를 생산할 수 있게 된다.
액침냉각설비에 담긴 냉각유와 서버를 테스트하고 있는 HD현대오일뱅크 직원들(HD현대오일뱅크)
고삐 죄는 석유화학 '스페셜티'로 전환 속도
전통적인 석유화학 사이클이 위협 받고 있다. 3~5년에 한 번씩 오던 호황은 불확실성과 중국 중동발 공급과잉 탓에 이제 기대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중동과 중국의 범용 소재 생산 확대로 공급과잉까지 오며 벼랑 끝에 몰린 석유화학 업계다. 하지만 석유화학은 반도체·자동차·건설·유통 등 전 산업 분야의 근간으로 우리나라가 포기할 수 없는 분야다.
국내 화학기업들이 주로 생산했던 PE(폴리에틸렌), PP(폴리프로필렌), PVC(폴리염화비닐) 등은 이제 범용으로, 중국과 경쟁에서 밀리는 상황이 됐다. 이에 업계는 스페셜티 생산 확대에 집중하는 분위기다. 스페셜티는 반도체·전기차·드론·AI 등 새로운 산업 트렌드에 필요한 소재로, 아직까지 중국과의 경쟁에서 격차를 보일 수 있는 분야다.
LG화학은 최근 ‘초고중합도 PVC’ 생산라인 시험 전환을 통해 스페셜티(고부가가치 제품)를 위한 사업 구조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전남 여수공장에 있는 6개의 기존 PVC 생산라인 중 두 개의 라인을 중단하고 '초고중합도 PVC' 생산라인으로 전환을 위한 테스트를 진행중이다. 특히 LG화학은 올해 안으로 초고중합도 PVC 라인을 정비한 후 올 1분기 중 전기차 급속·초급속 충전 케이블 용도로 제품을 출시한다는 구상이다. 이 외에도 폴리올레핀 엘라스토머(POE), 전기차 타이어용 합성고무 스타이렌 부타디엔 고무(SSBR), 반도체 세정액 'C3-IPA' 등도 LG화학의 새로운 먹거리로 기대를 받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최근 고강성 난연 PP(폴리프로필렌) 개발에 성공했다. 해당 소재는 화재 변수가 있는 전기차 배터리용 소재로 각광 받는다.
또 지난해 5월 기능성 첨단소재를 생산하는 자회사인 삼박엘에프티㈜가 전남 율촌 산단내에 신규 컴파운딩 공장 착공식을 개최했다. 공장 부지만 24만6871㎡(7만4678평)에 달한다. 롯데케미칼은 4500억원을 투자해 올 하반기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삼박LFT는 기존의 충남 아산, 예산 공장은 자동차 및 전기전자용 LFT, TPO 등의 기능성 특수 컴파운드 소재를 지속 생산하고, 신설되는 율촌산단 공장을 통해서는 TV, 냉장고 등의 가전제품과 휴대폰, 노트북 등의 IT기기, 자동차 및 의료기기에 사용되는 ABS, PC 등의 컴파운딩 소재를 생산할 계획이다.
금호석유화학은 지난해 3분기까지 2600억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올리며 적자에 허덕인 다른 석유화학사와 다른 행보를 보였다.
실적 주도를 견인한 소재는 SSBR(고기능성 합성고무)이다. 금호석화는 일찌감치 범용 합성고무 생산라인을 친환경·고부가가치 설비로 교체하며 스페셜티 매출 비중을 60% 넘게 늘리면서 포트폴리오를 재편한 것이 주효했다. 고무원료 배합 기술 등이 중요한 합성고무 시장에서는 아직까지 중국이 한국의 기술력을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금호석화는 2026년까지 연 매출 12조원을 달성하기 위해 기능성합성고무(EPDM)를 증설하고 있다. EPDM은 오존·자외선·풍화·고온에 대한 저항성이 강한 소재로 자동차와 건설 등 다양한 산업에 쓰이고 있다.
한편 정부는 침체된 석유화학 업계를 살리기 위해 사업재편 지원을 공식화했다. 산업 전체 측면에서 공급과잉인 나프타분해시설(NCC) 설비 합리화를 독려하고, 자발적 사업재편을 유도하기 위해 3조원 규모의 정책금융을 지원한다는 게 주요 골자다. 여기에 납사·납사 제조용 원유에 대해 무관세 기간을 내년에도 1년 연장하는 등 글로벌 시장 경쟁력 강화에도 공을 들인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달 '경제관계장관회의 겸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를 통해 범부처 합동으로 만든 '석유화학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을 발표했다. 이번 대책은 석화 산업의 공급 과잉으로 국내 석화 업계가 구조적 위기를 맞은 것이 배경이 됐다.
산업부는 "국내 석화산업은 세계적인 석유화학 설비 증설에 따른 글로벌 공급과잉과 범용품 중심 수출 의존형 성정전략이 한계에 봉착하면서 전례 없는 위기 상황을 맞고 있다"며 "석화 업계 스스로 자구 노력을 해오고 있고 사업재편 의지도 충분한 만큼, 정부는 이를 촉진하도록 제도적 지원에 나설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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