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화학 수요 둔화 직격탄 '마이너스 성적표' 받아
정유업계 고유가 타고 역대급 실적…횡재세 논란도
코로나 3년차를 맞은 석유화학업계는 중국의 고강도 방역 조치에 따른 수요 급감으로 최악의 시기를 보냈다. 반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유가가 급등하면서 국내 정유 4사는 올해 상반기에만 10조원이 넘는 기록적인 영업이익을 거뒀다. 화물연대의 파업 여파로 석유화학 공장들은 가동 중단 위기에 내몰렸고 전국에 품절 주유소가 속출했다. 고금리·고유가·고환율 등 어려운 여건에도 주요 기업들은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대규모 투자에 적극 나섰다.
◆화물연대 2차 총파업 피해 1조3천억원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는 지난 6월 8일부터 14일까지 8일간 1차 총파업에 이어 11월 23일부터 12월 9일까지 16일간 2차 총파업을 벌였다. 특히 겨울철 길목의 2차 화물연대 파업으로 산업계가 입은 피해는 약 4조원에 달한 것으로 추산된다. 석유화학 제품의 운송 차질이 생산 차질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정부는 석유화학 분야에 추가 업무개시명령도 발동했다. 석유화학업계 피해액은 1조3500억원에 달하는 피해를 봤다. 공장 감산으로 매출 차질은 물론 석유화학 관련 소재를 사용하는 자동차 등 주력산업과 플라스틱 연관 산업도 연쇄 피해를 입었다. 정유업계도 전국 탱크로리(유조차)가 집단으로 석유제품 운송을 중단함에 따라 전국에 품절 주유소가 속출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정유사, 초대형 석유화학 확장 프로젝트
정유사들이 기존 전통 정유업 중심에서 벗어나 석유화학 사업에 투자를 확대하는 등 '종합 에너지 기업'으로 변모를 모색했다. 에쓰오일(S-OIL)은 무하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방한에 맞춰 '샤힌 프로젝트'를 최종 의결했다. 이 사업은 울산 온산국가산업단지에 세계 최대 규모급 정유·석유화학 스팀크래커(기초유분생산설비)를 구축해 석유화학 공급에 박차를 가하는 전략의 일환이다.
GS칼텍스는 2조7000억원을 투자해 전라남도 여수2공장 인근에 올레핀 생산시설(MFC·Mixed Feed Cracker) 가동을 시작했다. 기존 나프타분해시설(NCC)과는 달리 정유공정에서 생산되는 액화석유가스(LPG), 석유정제가스 등 다양한 유분을 원료로 투입하는 초대형 설비다.
현대오일뱅크는 롯데케미칼과 합작사인 현대케미칼을 설립, 충남 서산 대산공장에서 중질유 기반 석유화학설비인 HPC 공장을 준공했다. HPC(Heavy-feed Petrochemical Complex) 프로젝트는 3조원을 투자하는 초대형 석유화학 사업으로 서산에서만 연간 에틸렌 85만톤, 프로필렌 50만톤을 추가 생산할 계획이다.
◆국제유가 변동성 '롤러코스터'
석유시장 전문가들도 유가 전망을 주저할 만큼 변동성이 커졌다. 원유 생산국들의 감산, 중국의 방역조치 완화, 미국 원유재고 급감, 러시아 제재조치 등이 복합적으로 맞물려 원유시장이 대혼란에 빠진 형국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수입하는 중동산 두바이 유가는 올해 1분기 초 배럴당 70달러에서 3월에는 100달러까지 뛰었고, 2분기 초 120달러를 찍고 2분기 평균 105달러에서 등락을 거듭했다. 3분기 초 115달러에서 시작해 8월에는 92달러대를 나타냈다. 4분기에는 85~90달러 선에서 움직이다가 12월에는 70달러 초반까지 하락했다.
◆'경유의 배신'…휘발유보다 리터당 300원 비싸
국내 경유 평균 판매 가격은 지난 5월, 2008년 6월 이후 14년 만에 처음으로 휘발유 가격을 추월했다. 당시 경유 가격은 L당 1947.59원으로 휘발유 평균 판매 가격 1946.11원보다 1.48원 더 높았다. 이후 경유 가격은 6개월째 휘발유를 앞지르고 있다. 가격차도 점점 벌어져 12월 중순에는 전국 평균 경유 가격이 휘발유 가격보다 230원 비싸게 거래되고 있다. 지역에 따라 경유가 휘발유보다 300원 가까이 더 비싸게 판매되는 주유소도 있다. 올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유럽의 에너지 수급 위기를 야기하면서 경유값은 가파르게 상승했다. 유류세 인하 조치도 가격 역전현상을 부추겼다. 겨울철 난방 수요가 증가한 것도 경유 가격 상승에 영향을 미쳤다. 경유의 유류세 인하 효과가 휘발유보다 적다는 점을 고려하면 가격 역전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석유화학기업 역대 최악 실적
국내 석유화학 업계는 올해 마이너스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제로 코로나 정책에 따른 중국 산업계의 가동률 감소,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원자재 가격 상승, 전쟁 및 보호무역주의 확산으로 글로벌 시장이 위축됨에 따라 중간소재를 공급하는 석유화학산업이 직격탄을 맞았다. 국내 대표 석유화학기업인 롯데케미칼의 경우 올해 2분기 영업손실 214억원, 3분기 영업손실 4239억원을 기록했다. LG화학·한화솔루션·금호석유화학·SKC·대한유화 등 주요 화학기업들은 3분기까지 적자를 기록하거나 전년대비 대폭 줄어든 실적을 나타냈다.
◆글로벌 석유기업 횡재세 부과 논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석유 기업들에게 '횡재세(windfall tax)'를 물리는 방안을 언급하면서 논란이 세계적으로 확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석유 기업들의 이익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부터의 횡재"라며 "석유 기업들이 거둔 이익을 유가 인하를 위해 투자하지 않을 경우 불이익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횡재세는 대외적 환경으로 인해 막대한 이익을 낸 기업에 추가적으로 징수하는 초과 이윤세를 의미한다. 에너지 가격 고공행진으로 전 세계가 시름하는 가운데 고유가를 기회로 막대한 이윤을 얻은 에너지 기업에 횡재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논리다. 유럽 각국은 횡재세를 도입하는 분위기다. 영국은 올해부터 2028년까지 현재 25% 수준인 전기·가스 업체 세율을 35%로 인상하고, 발전회사에도 이익의 45%를 새로 세금으로 부과하는 방안을 시행했다. 이탈리아는 지난해 10월부터 올 3월까지 500만 유로 이상 이익을 낸 에너지 기업에 25%의 횡재세를 부과했다. 독일과 핀란드도 한시적 횡재세 부과 법안을 마련 중이다. 현재 국내 국회에는 횡재세와 관련한 법안이 두 건 계류된 상태다. 정치권에서는 횡재세가 연내 도입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고 있다.
◆완성차-배터리업계 간 JV(합종연횡) 확대
국내 배터리 3사는 글로벌 업체와의 합종연횡 전략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현재 북미 지역에 GM(얼티엄1·2·3공장), 스텔란티스, 혼다 등 주요 완성차 업체와 함께 합작 배터리 생산공장을 건설하며 생산 능력을 확대하고 있다. GM과의 합작회사인 얼티엄셀즈는 최근 미국에서 국채 금리로 3조원이 넘는 투자금을 조달하는 데 성공했다.
삼성SDI는 지난 5월 스텔란티스와 함께 미국의 첫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셀·모듈 합작법인의 부지를 인디애나주 코코모시로 선정하고 25억 달러 이상 투자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연간 생산 23GWh 규모의 공장을 세울 예정으로 현재 기초공사에 돌입한 상태다. SK온과 포드의 합작법인 블루오벌SK는 최근 미국 켄터키주 글렌데일에서 블루오벌SK 공장의 첫 삽을 떴다. SK온은 현대자동차그룹과도 손잡고 미국 조지아주에 배터리 합작공장을 세우기로 했다.
◆화학업계 배터리 소재 분야 투자 확대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이 가파르게 성장하는 가운데 석유화학업계는 배터리 소재 사업을 선점하기 위한 적극적인 투자 행보를 보였다. LG화학은 세계 1위 종합 전지 소재 회사로 성장한다는 목표 아래 양극재·분리막·탄소나노튜브등 배터리 소재 분야에 2026년까지 1.7조원을 투자한다. 미국 테네시주에 30억 달러(4조800억원)를 투자해 최대 규모의 양극재 공장 건설을 추진한다. 롯데케미칼은 '전지소재사업단'을 신설하고 2030년까지 배터리소재 분야에 총 4조원을 투자한다. 2330억원을 투자해 고순도 에틸렌카보네이트(EC)와 디메틸카보네이트(DMC) 생산 시설을 대산석유화학단지에 건설하기로 했다. 또 국내 대표 동박 제조기업인 일진머티리얼즈 인수를 결정했다.
◆미국 IRA 대응 위한 배터리업계 현지 투자 확대
미국 정부가 지난달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발효하며 전기차·배터리의 북미 현지 생산과 함께 중국산 광물·소재 배제에 나섰다. 배터리 핵심 원자재 중국 의존도가 높은 국내 배터리업계는 원자재의 '탈(脫)중국'을 위해 북미·호주 등지로 눈을 돌렸다. LG에너지솔루션은 캐나다 광물업체 3곳과 업무협약(MOU)을 맺고 배터리 원자재를 공급받기로 했다. SK온은 호주의 리튬 업체와 손을 잡았다. 삼성SDI는 캐나다 온타리오 주 정부로부터 전기차 배터리 공장 설립 요청을 받았다.
◆'넷제로' 제품 및 기술 전환 가속
화학업계는 글로벌 탈(脫)탄소 움직임에 발맞춰 친환경 기술 연구·개발부터 관련 제품 생산까지 친환경 기업으로의 전환에도 힘을 쏟았다. SK케미칼은 화학적 재활용 플라스틱 소재를 적용한 칫솔을 개발해 내년 1월 출시할 예정이다. 또 '바이오 소재 '에코트리온'을 적용한 인조가죽을 개발했으며 네이버와 손잡고 친환경 플라스틱 소재 선순환 생태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LG화학은 세계 4대 곡물 가공 기업인 ADM과 손잡고 미국에 생분해성 바이오 플라스틱 공장을 짓는다. 또 식물성 바이오 원료를 적용한 고기능성 플라스틱 제품을 출시했으며 KT그룹과 친환경 임대 단말 생산체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롯데케미칼은 롯데건설, 이피에스코리아와 함께 친환경 소재인 EPP(발포 폴리프로필렌)를 활용해 층간 소음 완충재를 개발했다. 화학적 재활용 페트(C-rPET)의 시생산에도 나섰다.
SK루브리컨츠는 생산·수송·소비·폐기 등 제품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을 상쇄한 '탄소 중립 윤활유'를 출시했다. GS칼텍스는 야자·코코넛·콩·유채씨 등 재생가능한 식물 원료로 만든 윤활기유를 사용한 친환경 엔진오일 'Kixx BIO1'을 출시했다. 현대오일뱅크는 식료품 제조 및 유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을 바이오디젤 공정 원료로 활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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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22 결산] 에너지·정유·화학업계 10대 뉴스 (e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