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여천NCC]](https://cdn.ebn.co.kr/news/photo/202607/1717431_747421_3434.jpg)
반세기 동안 양적 팽창을 거듭하며 세계 4위 규모로 성장한 한국 석유화학 산업이 생존을 위한 대대적인 구조 전환기를 맞고 있다.
외형 확장 중심의 성장 공식에 마침표를 찍고 고부가 가치 산업으로 체질 전환이 본궤도에 진입한 것이다.
대산과 여수에서 249만톤 규모의 설비 감축 승인이 이뤄지는 등 대규모 구조조정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다만 울산에서는 180만톤 규모의 신규 설비가 가동을 앞두고 있는 점은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23일 한국화학산업협회 집계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국내 에틸렌 생산능력은 연간 1천295만톤이다.
이는 전 세계 생산능력(2억2천530만톤)의 5.7% 수준이다. 중국(5천130만톤)과 미국(4천640만톤), 사우디아라비아(1천760만톤)에 이어 확고한 세계 4위 규모다. 인도(860만톤)와 이란(790만톤)을 크게 앞서며 국내 석유화학 산업을 글로벌 수출 주도형 무대로 이끈 든든한 원동력으로 작용해왔다.
'산업의 쌀'로 불리는 에틸렌은 플라스틱, 합성고무, 합성섬유를 만드는 필수 기초 원료로 활용된다. 우리나라는 1967년 울산정유공장 인근을 석유화학단지로 지정하며 본격적인 산업에 진출하며 주요 산업으로 육성했다.
이를 통해 1972년 울산, 1979년 여천, 1991년 대산 단지를 차례로 가동했다. 1978년 연간 11만5천톤에 불과했던 생산능력은 2013년 835만톤을 거쳐 46년 만에 110배 이상 팽창하며 2024년 480억달러의 수출액을 달성했다.
◆양적 팽창 멈춘 석화업계, 뼈 깎는 감산 돌입
승승장구하던 국내 업계는 최대 수출국이던 중국의 공격적인 자급화 및 대규모 증설 정책에 직격탄을 맞았다.
중국이 대형 정유 화학 통합단지는 물론 석탄 기반 설비까지 잇달아 확충하면서 글로벌 화학 시장은 극심한 공급과잉의 늪에 빠졌다.
S&P글로벌 분석 결과 중국은 2024년과 2025년에만 한국의 감축 목표치(370만톤)의 세 배에 달하는 1천만톤 이상의 에틸렌 설비를 추가했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자동차, 전자 등 전방 산업 수요마저 위축되면서 국내 설비 가동률은 급전직하했다. 2025년 예상 수요량(823만톤)과 수출량(206만톤)을 감안할 때, 2024년 기준 설비 활용률은 약 79% 수준에 머무른다.
고정비 지출이 막대한 나프타분해시설(NCC) 특성상 낮은 가동률의 장기화는 눈덩이 같은 손실 누적으로 이어져 기업 생존을 직접적으로 위협한다.
결국 업계는 과거의 밀어내기식 범용 제품 수출 전략을 폐기하고, 설비를 통폐합하는 혹독한 자율 구조조정을 선택했다.
가장 먼저 이뤄진 사업재편은 롯데케미칼 대산사업장과 HD현대케미칼의 통합이다. 이를 통해 롯데 측의 연산 110만톤 규모 NCC 가동을 전면 중단하고 경쟁력을 잃은 범용 다운스트림 설비를 선제적으로 정리하는 고강도 조치를 단행했다.
이어 산업통상자원부는 최근 여천NCC, 롯데케미칼, 한화솔루션, DL케미칼이 제출한 여수 1호 재편안을 추가 승인했다. 여천NCC의 에틸렌 설비 3기 중 2기 가동을 최소 3년 이상 멈춰 연산 139만톤의 공급 물량을 걷어낸다.
각 회사의 기초소재 사업과 다운스트림 자산을 신설 통합법인으로 묶어 원료 공급부터 생산, 판매를 단일 체계로 일원화해 원가 경쟁력을 극대화할 계획이다.
정부는 이러한 대규모 설비 감축이 초래할 지역경제 타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다각적인 안전장치를 함께 마련했다. NCC는 배관, 물류, 정비업체가 복잡하게 연결된 장치산업인 만큼 단일 공장의 가동 중단이 인근 상권과 협력업체에 연쇄 타격을 준다. 대산과 여수 사업재편 승인 과정에 고용유지지원금과 대규모 지역투자 지원 정책이 필수 조건으로 포함된 것도 이 때문이다.
◆울산 재편이 남은 과제…‘고부가’ 질적 교체기
대산과 여수에 이어 석유화학의 발상지인 울산 단지의 재편 여부가 한국 석화 산업의 최종 생산능력을 판가름할 척도로 떠올랐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울산까지 구조 개편이 이어질 때 비로소 우리 산업 전체가 다시 설 수 있다"며 결단을 촉구했다.
하지만 SK지오센트릭과 대한유화 등 울산 입주 기업들은 얽힌 이해관계와 단일 설비 특성 탓에 원활한 감축 합의를 이뤄내지 못하고 있다.
가장 핵심적인 쟁점은 에쓰오일이 올해 상업 가동을 목표로 막대한 자본을 투입해 건설 중인 초대형 복합설비 ‘샤힌 프로젝트’다. 원유에서 직접 화학 제품을 뽑아내는 신기술이 적용돼 나프타 기반의 기존 NCC 대비 원가 경쟁력이 압도적으로 높다.
단일 설비 최대인 연간 180만톤의 에틸렌을 신규 공급하게 되며, 이는 대산과 여수에서 뼈를 깎아 감축한 249만톤의 72%를 다시 채우는 규모다.
가동 시 국내 전체 생산능력은 1천226만톤으로 집계되며, 감축 효과는 2024년 대비 5.3% 수준으로 줄어든다. 목표로 한 1천100만~1천200만톤 체제 진입을 위해서는 여수 지역의 2차 재편과 SK지오센트릭의 66만톤 설비 폐쇄 논의가 마무리돼야 한다.
현재 여수 단지에서는 LG화학과 GS칼텍스가 합작법인 지분과 투자 부담을 놓고 추가적인 감산 조율을 이어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진통을 단순한 공급량 증감이 아닌 석유화학 산업의 거대한 질적 교체기로 진단한다. 경쟁력을 잃은 낡은 노후 설비가 시장 원리에 따라 도태되고, 압도적 고효율을 자랑하는 최신 설비로 생산의 축이 자연스럽게 이동하는 과정이라는 분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