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국내 에너지업계가 두 후보의 정책 노선에 주목하고 있다. 선거에서 민주당 카멀라 해리스 후보가 당선되면 조 바이든 정부의 정책 기조가 이어지겠지만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재집권할 경우 정책 방향성이 크게 달라지게 되는 만큼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양새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오는 11월 치뤄지는 제47대 미국 대통령 선거는 미국뿐만 아니라 주요 교역국인 우리나라에도 중요한 이벤트다. 특히 친환경·에너지 부문에서 양당의 정책이 나뉘고 있어 이목이 쏠린다.
신중호 LS증권 연구원은 "민주당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정책을 포함한 에너지 안보와 기후변화 정책을 고수해 나갈 방침이지만 공화당은 화석 연료의 사용을 지지하는 등 기업 친화적 스탠스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해리스는 조 바이든 대통령의 친환경 정책 기조를 이어받아 IRA를 기반으로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와 전기차 산업을 중점적으로 지원할 것으로 예상된다. 청정에너지 분야 투자를 확대하고 에너지 효율 기준 강화, 미국산 저탄소 자재 사용 의무화 등 환경 기준을 강화할 전망이다.
앞서 해리스가 속한 바이든 행정부는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경고하며 전기차 확대를 포함해 다양한 친환경 정책을 펼쳐왔다.
바이든 정부는 2022년 전기차 및 친환경 에너지를 지원하는 IRA와 반도체 기업을 돕는 반도체과학법(CSA)을 선보이며 해당 산업 기업들이 미국에서 생산할 경우 막대한 보조금을 약속했다. 이에 한국 기업들도 앞다퉈 미국에 대규모 생산 시설을 구축한 바 있다.
반면 공화당은 석유, 천연가스, 원자력 등 전통에너지 생산 증대를 주장한다. 트럼프의 에너지 정책은 바이든 대통령이 시행한 탄소배출량 감축 정책 등 환경규제를 철폐하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화석연료 개발 및 인프라 구축을 지원함으로써 미국의 에너지 자립도를 개선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주로 정유, 석유화학, 민자발전 관련 업계가 수혜를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는 지난 10일(현지시간) 대선 TV 토론에서 "바이든 정부의 친환경 정책으로 일자리가 사라지고 이제 멕시코에 대규모 자동차 공장이 들어서고 있지만 우리는 그렇게 두지 않을 것"이라며 청정에너지 중시 정책 폐기 방침을 시사했다.
트럼프는 바이든 정부의 주요 정책이었던 IRA, CHIPS 등의 즉각적인 축소 및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대선에서 승리하면 억만장자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이끄는 정부효율위원회를 신설해 불필요한 재정 지출을 삭감하고 '그린 뉴딜'(친환경 경제성장 정책)을 폐기하는 한편 미국 내 원유 및 가스 시추를 통해 에너지 가격을 낮출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가 집권할 경우 미국 내 셰일 오일 생산 확대, 석유 업체에 대한 규제 및 세금 완화, 전략적 비축유 추가 확보 등 정책이 본격적으로 시행되고 미국 내 원유공급이 확대되면서 중장기적으로 국제유가의 하향 안정화를 이끌 전망이다. 유가가 하향 안정화되면 2022년 이후 크게 상승한 국내 정유사의 영업실적에는 단기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유가가 급격하게 하락할 경우 큰 폭의 재고 관련 손실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기적인 유가 관련 손실 발생 가능성에도 트럼프의 에너지 정책은 국내 정유사들의 사업 및 재무적 변동성 완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배출가스 규제 강화, 전기차 전환 촉진 등의 친환경 정책은 휘발유, 경유 등 운송용 수요에 직접적인 부담으로 작용했다.
한국신용평가는 "트럼프 재집권시 전기차 등 친환경 에너지 전환이 지연되고 연료유 중심의 석유제품 수요가 장기화됨에 따라 정유산업의 중장기적인 사업안정성 유지에 기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재무부담 완화 효과도 기대된다. 한신평은 "2022~2023년 대규모 영업이익 창출에도 고유가 기조로 인한 운전자금 부담이 지속되면서 국내 정유사들의 차입부담 확대 요인으로 작용했다"며 "유가 하향 안정화 기조가 가시화하면 매출채권, 재고자산 등이 상당 수준 감소함에 따라 국내 정유사들의 현금흐름이 개선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석유화학업계도 트럼프 에너지 정책의 수혜를 입을 것으로 기대된다. 트럼프의 환경규제 완화 정책은 국내 석유화학 업체들의 미국 수출 물량 증가나 친환경 제품으로의 포트폴리오 전환에 대한 시장 선점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2021년 11월 특정 화학물질과 유해물질을 미국 내에서 생산하거나 수입하는 경우 관련 업체에 세금을 부과하는 슈퍼펀드세를 복원하는 법안에 서명했으며 최근에는 2035년까지 연방정부에서의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단계적으로 중단해 나가기로 결정한 바 있다.
트럼프는 이러한 석유화학 제품 관련 규제 정책 폐기를 공언하고 있으므로 집권 시 국내 석유화학 제품의 미국 수출 수요가 증가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한신평은 "국내에서 북미 지역으로의 석유화학 제품 수출 물량은 2023년 연간 약 300만톤"이라며 "절대적으로는 크지 않은 규모지만 지속적인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으므로 미국 내 석유화학 수요 개선시 추가적인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석유화학 업체들이 친환경 바이오·재활용 플라스틱 분야 전환 속도를 늦춘다면 현재 활발한 투자와 연구개발을 진행 중인 국내 석유화학 업체들이 시장을 선점하며 중장기적으로 반사 이익을 얻을 가능성도 있다.
또 보호무역 정책 기조 하에서 대중국 견제기조가 강화될 경우 미국 고객사들의 공급망 다변화가 가속화되며 국내 업체들이 반사이익을 얻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최대 수출 시장인 중국 수요가 위축되고 역내 공급 과잉이 심화되는 부정적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한편 트럼프 집권 시 미국은 가스 및 원자력 발전 위주의 전력시장이 지속될 것으로 보이며 국내 전력시장에서도 LNG 발전의 중요성이 보다 부각될 전망이다.
미국의 화석연료, 원자력 우선 정책 영향으로 글로벌 에너지 전환이 지연되고 국내 전력시장에서도 당초 계획 대비 신재생에너지 전환이 가속화되지 못한다면 중장기적으로 원자력과 더불어 LNG 발전에 긍정적인 산업 여건이 지속될 수 있다.
앞서 트럼프는 2017년 취임 직후 원전의 부활을 선언하고 침체돼 있던 원전 산업을 활성화시킨 바 있다.
한신평은 "트럼프의 파리기후협정 재탈퇴, 화석연료에 대한 규제 완화 및 생산 촉진, 원자력 에너지에 대한 지원 등 주요 에너지 공약은 국내 발전산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