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아람코가 아시아 투자 확대를 위해 자국 내 정유·석유화학 통합 설비 증설 계획을 재검토한다. 재정적자로 인한 자금 부담 확대에 따른 결정으로 풀이된다. 업계는 이번 증설 취소가 중장기적으로 정유·석유화학 공급과잉 부담을 완화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2일 외신 및 화학업계에 따르면 아람코 자회사 사빅이 걸프 해안의 라스 알 카이르에서 하루 40만배럴 규모의 정유·석유화학 통합 공장(COTC) 건설을 중단했다.
해당 설비는 석유화학 생산 비중을 50%까지 늘린 COTC다. 2022년 증설이 발표됐으며 제품 수출을 위한 신규 항구 건설도 계획된 바 있다.
이밖에도 사우디 주바일과 홍해의 얀부에 계획된 세 개의 화학 시설에 대해서도 계속 진행 여부를 확인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뉴스에서는 사빅과 오만 OQ, 쿠웨이트 KPI의 합작 오만 두쿰(Duqm) 프로젝트와 쿠웨이트 알주르(Al-Zour) 석화플랜트 증설 취소 가능성도 언급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사우디는 자국 내 화학단지 건설과 중국에 합작법인(JV)을 설립해 대규모 크래커 건설하는 데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는 향후 둔화될 원유 수요를 화학으로 전환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재정적자 확대에 따른 자금 부담이 커지면서 이번 사우디 프로젝트 재검토를 결정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 자국 내 신규 공장을 짓는 것 보다 아시아 회사의 지분 투자를 더 선호하는 것으로 비춰지고 있다. 수요가 집중된 아시아 시장은 중국 JV를 통해 대응이 가능한 만큼 ‘선택과 집중’을 택했다는 게 업계의 해석이다.
하나증권은 사우디의 증설 취소는 높아진 균형재정 유가 속 포트폴리오 재조정이라고 분석했다.
윤재성 하나증권 연구원은 “이번 증설 취소는 높아진 균형재정 유가 속 투자 우선 순위 재조정 과정에서 나타나는 변화”라며 “그러나 여전히 원유의 Outlet으로서 석유화학의 중장기 역할은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있어 관련 투자는 중국 업체에 대한 지분투자를 중심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증설 취소가 정유·석유화학 공급과잉 부담을 완화하고 국내 기업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앞서 중국발 공급 과잉의 직격탄에 이어 중동 국가가 잇달아 석유화학 분야에 뛰어들면서 국내 기업들의 수익성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 바 있다.
전유진 iM증권 연구원은 “섣부르지만 2027년 기점으로 예상되던 중동 증설 사이클 우려의 소폭 완화를 기대해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오는 2025~2029년 총 5년 간 예정된 글로벌 에틸렌 증설 4400만톤 중에서 중동은 500만톤으로 약 12%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증설 취소가 언급된 설비는 이 500만톤에 포함되지 않는다.
하지만 취소 가능성이 언급된 설비는 셸, 엑슨모빌, 시노펙 등 기업과의 합작법인이다. 이를 고려할 경우 아람코·토탈 합작사 ‘아미랄’, 카타르에너지·셰브론 필립스 합작사 ‘라스라판(Ras Laffan)’ 등 500만톤에 포함된 프로젝트의 증설 취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윤재성 하나증권 연구원은 “2026년 가동되는 세계 최초이자 유일무이한 TC2C인 에스오일 샤힌 프로젝트 원가우위가 부각될 것”이라며 “LG화학, 금호석유화학, SK이노베이션, 롯데케미칼 등 기업에게도 긍정적“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