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석유화학 산업이 생존의 갈림길에 섰다. 중국의 자급률 확대와 글로벌 환경규제 강화로 시장 축소 위기에 직면해서다. 향후 부정적 전망이 우세한 가운데 체질 개선을 통한 미래 경쟁력 확보가 최우선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29일 화학업계에 따르면 주요 석유화학 업체들이 지난해 일제히 부진한 성적표를 받았다.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영업손실 3332억원을 기록했다. 전통 석유화학 분야인 기초소재 부문이 영업손실만 2015억원이다. LG화학은 연간 영업이익이 2조5290억원으로 집계됐으나 석유화학 부문은 1430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적자 전환했다.
금호석유화학은 지난해 총 3590억원의 영업이익을 내 상대적으로 양호한 수준을 보였지만 전년과 비교하면 70% 가까이 감소했다.
저조한 실적은 글로벌 경기침체로 인한 수요 위축과 함께 중국의 대규모 생산시설 증설에 따른 공급 과잉 영향이다. 중국의 범용 제품 자급률은 90% 이상으로 높아졌다. 이에 국내 석유화학 업체들은 수익성 악화와 점유율 하락으로 고전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중국의 석유화학 범용 제품 자급률이 향상되면서 2013년 235억달러(약 31조원)에 달했던 대중 수출은 지난해 170억달러로 줄었다. 코로나 이전만 해도 중국의 자급률은 60% 수준이었지만 몇 년 사이 증설이 이어지며 더는 한국산을 찾지 않게 됐다.
석유화학 산업은 사이클(주기)을 타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경기 상황에 따라 호황과 불황이 반복된다. 하지만 중국발 공급 과잉 상황이 지속되면 경기가 좋아지더라도 범용 제품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게 된다.
범용 석유화학 사업이 한계 사업으로 전락한 데다 유럽연합(EU)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국제연합(UN) 플라스틱 협약 등 글로벌 환경 규제가 강화됨에 따라 석유화학업계 사업 여건은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석유화학산업은 대표적인 탄소다배출 업종이다. 철강산업에 이어 온실가스 배출량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석유화학 산업이 성장의 한계에 이르렀다는 지적이 잇따르는 가운데 업체들은 사업 재편 및 신사업 추진에 속도를 내며 타개책을 찾는 분위기다.
LG화학은 지난해 정보기술(IT)용 필름 사업에서 전면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한계사업을 정리하는 대신 3대 신성장동력인 친환경, 이차전지 소재, 글로벌 신약에 집중할 방침이다.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은 “기존 회사들이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고성장·고부가가치 사업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고 언급한 바 있다.
롯데케미칼은 전지소재, 수소에너지, 리사이클 등 3대 신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2030 비전’을 수립했다. 지난해 중국 내 범용 석유화학 제품 생산 공장을 모두 정리하고 배터리 분리막 등 태양광 소재 고부가 제품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기업과 차별화할 수 있는 친환경·고부가가치 제품을 확대하고 미래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